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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고전을 읽는 사람들, 허세일까 진심일까?

by 클래식보이 2025. 4. 30.

고전 읽기의 두 얼굴

고전을 읽는다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지적이고 격조 있는 이미지로 비친다. 누군가가 『죄와 벌』이나 『순수이성비판』, 혹은 『논어』를 읽는다고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지적이거나, 혹은 ‘가식적인’ 사람으로 바라보는 양가적 시선을 가지곤 한다.

현대 사회에서 고전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행위 이상으로,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고, 사회적 평가를 유도하는 문화적 제스처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고전을 읽는 사람들은 정말 그 내용을 ‘이해하고’, ‘즐기며’, ‘삶에 적용’하고 있을까? 혹은 단지 지적으로 보이기 위한 허세에 불과한 것일까?

이 글에서는 고전 독서의 동기, 사회적 맥락, 심리적 배경, 그리고 진정성과 위선성의 경계에 대해 깊이 있는 탐구를 시도한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 명작인가, 성역인가

고전(classic)은 단순히 오래된 책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간의 시험’을 견뎌낸 작품, 혹은 특정한 사상과 문학적 구조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성과 사회 구조를 탐구하는 작품이 고전으로 불린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정의들이 있다:

  • T.S. 엘리엇: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는 작품이다.
  • 이탈로 칼비노: 고전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고전은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다.

이러한 정의는 고전이 단순히 ‘옛날 책’이 아니라, 현재에도 의미 있는 해석을 가능케 하는 살아 있는 텍스트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권위를 앞세운 고전은 독서의 동기를 ‘진정성’보다 외적 평가에 의존하게 하는 위험성도 내포한다.


왜 사람들은 고전을 읽는가? ― 독서의 다양한 심리적 동기

고전 독서의 동기는 단순하지 않다. 사람마다, 혹은 한 사람 안에서도 다양한 심리가 교차된다. 다음은 대표적인 유형이다.

진정한 지적 호기심

많은 독자들이 철학, 문학, 역사에 대한 내면의 궁금증과 사고의 깊이를 추구하며 고전을 집어 든다. 예컨대 『국가』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를 통해 현대 정치 문제를 사유하거나, 『변신』을 읽고 현대인의 소외를 성찰하는 독서가 그렇다.

자기 계발적 욕망

고전은 일종의 **‘지적 권위의 아이콘’**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고전을 읽으면 똑똑해 보일 것 같고, 대화의 폭이 넓어질 것 같고, 교양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독서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는 자기 발전의 욕구와 외부 평가를 모두 반영하는 동기이다.

사회적 상징자본으로서의 고전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문화 자본’ 개념을 통해, 독서나 예술 감상이 계급적 위상을 드러내는 상징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예컨대 한 인물이 고전문학 독서 습관을 강조한다면, 그것은 자기 교양을 과시하거나, 혹은 특정한 사회 계층과의 동질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타인 시선에 대한 의식

SNS 시대에 고전 독서는 자기 브랜딩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 『죄와 벌』, 『이방인』 같은 책을 올리고 ‘#북스타그램’을 붙이는 행위는 단순히 독서 경험 공유 이상의 기능을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지적 이미지 구축을 위한 도구로 고전을 소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허세’의 실체 ― 정말 문제인가?

고전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일정 비율은 ‘허세’에 기반한 독서를 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 허세 자체가 독서를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허세에서 시작해 진심으로

처음엔 허영심이나 외적 평가를 의식한 독서일지라도, 책 속의 세계가 내면과 접속되는 순간, 독서는 진정한 자극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홍루몽』, 『돈키호테』 같은 작품을 ‘지루할 줄 알고’ 시작했다가, 그 안에서 의외의 재미와 감동을 발견하고 진정성 있는 독서로 전환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진심과 허세는 공존할 수 있다

진정성과 허세는 반드시 양자택일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복합적인 동기 구조를 가진 존재다. “고전을 읽고 싶다”는 생각 속에는 진심, 허영, 호기심, 불안감, 경쟁심 등 다양한 감정이 얽혀 있다. 이들을 무 자르듯 구분하기보다는, 그 다층적인 의미를 인식하고 포용할 필요가 있다.


진짜 중요한 질문: 읽는가, 아니면 아는 척만 하는가

고전을 읽는 것이 허세인지 진심인지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바로 실제 읽고 있느냐이다. 책장에 꽂아두고 사진만 찍는 것과, 문장을 곱씹고 사유하며 읽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한, 고전을 ‘어떻게’ 읽느냐도 중요하다. 단순히 요약본이나 해설서만 보거나, 특정 명언만 외우는 것으로 독서를 대체한다면, 그것은 단지 지식의 소비일 뿐 진정한 독서라고 보기 어렵다.

반면, 설령 처음엔 허영심에서 고전을 들었다 하더라도, 그 안의 문제의식과 미학에 집중하고, 자신의 삶과 대화하려는 노력이 있다면 그것은 ‘진심’에 해당한다.


결론: 고전을 읽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이유

결국 고전 독서는 ‘허세냐 진심이냐’라는 이분법보다는, 어떻게 읽고, 어떤 통찰을 얻느냐가 중요하다. 사회적 시선이나 동기가 독서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것을 통해 어떤 내적 변화와 사고의 확장을 경험하느냐다.

오늘날의 고전 독서는 더 이상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다양한 매체와 접근법을 통해 누구나 고전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어떤 이유로 시작했든, 책을 펴고 문장을 읽는 그 행위 자체는 언제나 의미가 있다.


추천 고전 목록: 진입 장벽이 낮은 고전부터 시작해보자

  • 『이방인』(알베르 카뮈) – 간결한 문체 속 존재론적 질문
  • 『변신』(프란츠 카프카) – 소외된 인간의 초현실적 초상
  • 『노인과 바다』(헤밍웨이) – 생의 의지와 존엄성에 대한 찬가
  • **『논어』 – 고대의 지혜가 현대 인간관계에도 주는 통찰
  • 『죄와 벌』(도스토옙스키) – 윤리, 죄의식, 구원의 심리극

당신이 고전을 읽는 이유가 무엇이든,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이다.
허세든 진심이든, 고전은 그 자체로 당신을 더 깊이 있는 세계로 이끈다.